1911년 8월 21일, 가로 77cm 세로 53cm의 여성이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가 사라진 걸 알아채지 못했죠. 쉬는 날이어서인지 목격자도 단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나서야, 그녀가 사라진 걸 알게 됐죠. 하지만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라졌는지조차 알아내기 힘들었죠. 그러자 세상은 그녀의 부재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존재감이 컸던 인물은 아니었지만 점점 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유명해지기 시작했죠. 그러다 2년도 더 흐른 1913년 11월, 마침내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언론과 세상의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2년간 사라졌던 그녀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모여들었죠. 직접 대면해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또 하나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녀는 생각보다 매우 작다는 사실과 몰려든 인파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사실. 그렇게 그녀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모나리자’입니다. 세계적인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긴 하지만 도난되기 전엔 지금처럼 유명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기의 관심을 끈 도난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인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반전이죠. 사라지면서 오히려 존재감을 높인 반전. 도난 사건이 가치를 높여 주었고, 그녀의 귀환은 거대한 루브르의 1등 작품이 되는 계가가 되었습니다.
반전은 임팩트가 강해서 잊을 수 없거나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무언가를 보여주고 강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방법을 반전이라고 합니다. 이 반전을 제대로 맞닥뜨린 우리는 결코 그 임팩트를 잊지 못하게 됩니다.
광고와 유머를 논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당연해서 유머라는 단어를 촌스럽게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광고계에서 유머는 새롭게 화두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바로 AI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AI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 인간적인 낭만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한 적 있는데 24년 칸 라이언즈 국제 광고제에서는 AI에 맞서는 키워드로 ‘유머’를 내세웠다.
칸에서 유머 카테고리를 신설했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기사 대부분은 ‘유머의 부활’이라는 표현을 쓴다. AI는 변한 시대가 만들었다면, 유머는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더 강력한 전략이다. 그리고 그 전략을 사용한 광고의 효과는 아주 오래간다.
유머는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기억에 남는다. 시대에 따라 과정이 바뀌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TV 앞에 앉아 광고를 시청했던 시절엔 많은 광고들 안에서 ‘기억에 남기는’ 역할로 유머가 작용했다면 요즘엔 하나의 콘텐츠로서 시청자들에게 선택받기 위한 무기로 유머를 사용한다. 결과적으로 브랜드를 남기는 수단임은 두 방법 모두 변함이 없다. 단순히 AI에 대적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서 광고에서 전략으로서 유머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광고의 한 문구가 유행어가 되었던 언젠가의 낭만은 당분간 재현되기 어렵겠지만, 매체가 다양해질수록 이런 광고의 재미 요소로서의 역할도 강화될 것으로도 추측한다. 이런 사실에 대해 앞으로 만나는 브랜드들도 공감하길 바라면서 언젠가 만든 광고에 재미를 느끼는 댓글이 달리기를 개인적으로 소망해 본다.
공항철도를 타고 공덕역으로 달리는 그 30분 안에 엔딩을 볼 수 있는 매우 가벼운 게임 <파스파투: 배고픈 예술가>. 진행 또한 매우 순탄해서 그냥 쓱쓱 낙서를 그리듯 한 스무 점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고 어디 어디의 초청을 받고 흉상이 세워지는 둥 꽃밭 가득한 해피엔딩을 보게 된다. 다만 흔들리는 공항철도 안에서 태블릿 PC와 펜슬을 꾹 쥐어 가며 시뻘게진 두 눈으로 뚫어져라 보는 그 일련의 과정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경험이었다. 저 개구리는 어째서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걸까. 아니 그보다 왜 주인공이 개구리여야만 했을까. 그건 우리의 삶이 양서류의 삶과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 아닐까. 물과 뭍(땅)을 수시로 오가며 살 수밖에 없는 양서류처럼, 꿈과 현실을 수시로 오가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서가 아닐까. 물에 닿지 않고 뭍(땅)에만 머물면 머지않아 말라죽듯이, 꿈에 닿지 않고 현실에만 머물면 결국 말라죽는 것이 인간의 삶일까. 뭍(땅)에 발 딛지 않고 물에만 머물면 서서히 잠겨 죽듯이, 현실에 발 딛지 않고 낭만에만 푹 젖으면 그대로 잠겨 죽는 것이 인간의 삶인 걸까? 지옥철에 낑겨 출근하는 현실이 내 몸을 졸라도 그 잠깐 30분의 행복이 지금의 나를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삶이긴 하겠다. 적어도 나의 삶이긴 하겠다. 태블릿 PC로도 출시가 된 만큼, 평소 놀리고 있는 태블릿 PC가 많은 우리 광고인들에게 쉽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다. 입력취소나 되돌리기 기능이 없어서 당혹스럽겠지만, 그것은 포토샵이라는 초거대 자본의 기술집약적 상품을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는 우리 광고인들의 일상일 뿐이고, 이것은 또 이것대로 가난한 화가의 리얼 라이프라고 생각하면 되기에, 단점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가격은 커피 한 잔 값. 오늘은 커피라는 우물 대신 화가가 되는 시간으로 퐁당 빠져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