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은 답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지의 정답란처럼 보기만 하면 확인할 수 있게, 한눈에 볼 수 있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멋지게 돌려 말했습니다. ‘답은 바람 속에 흩날리고 있다. 손에 쉽게 잡히지 않고 눈으로 뚜렷하게 볼 순 없지만 분명히 답은 바람 속에 있으니,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답란의 명확한 답은 오직 하나의 답만 있음을 주장합니다. 그 답 외엔 모두 틀린 것으로 간주하죠. 하지만 밥 딜런의 가사처럼 많은 뜻을 내포한 답은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의미를 포용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답이 될 수 있고, 다양한 위로와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틀린 답은 없습니다. ‘은유’의 힘입니다.
창작을 하는 수많은 활동들은 다양한 은유를 발견해내고 만드는 작업입니다. 브랜딩을 위해 만드는 콘텐츠도 결국, 수많은 은유를 만드는 것이죠. 소비자에게 숨어 있는 답을 찾아내는 재미를 주기 위한.
좋은 답은 하나가 아님을 stutter.ca는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브랜드가 콘텐츠에 담는 은유도 다양하지만, 소비자가 해석하는 의미 또한 다양해집니다. 그래서 ‘뭘 좋아할지 몰라’ 브랜드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죠. 어쨌든 수많은 답이 ‘바람 속에 흩날리고 있으니’ 그 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오로지 나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대뜸 글의 요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최신 상위노출 키워드를 거론해 보자면,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화제다. 그분의 시집을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가 한 끼 저녁처럼 꺼내 먹는 탐독자로서 크게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지만 스크롤을 드륵드륵 긁다가 순간 뇌리에 남는 기사는 90년 뒤 공개될 작품 캡슐이었다.
긴 겨울잠을 청하는 아기곰처럼 그 소설은 노르웨이 어느 숲에 잠들었다가 90년 뒤 세상의 빛을 볼 것이다. 그런데 나의 글들은 주인을 잘못 만나 하루는커녕 반나절을 못 넘겨 들춰지고 뜯겨지고 깎이기 일쑤다. 태어나게 해준 자의 못마땅한 눈초리를 끝없이 견디고 못 받을 미움까지 다 받고 결국 허공에 내다 버려질 것들. 나는 90년이나 묵혀둘 정도로 나의 글을 사랑하지 못한다. 되려 매일 미워하기 바쁘다. 애사심으로 시작한 회사 블로그 기고글들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한 글자 한 글자가 후회며, 썼다 지워서 지금은 LCD 화면에 보이지 않는 그 한 글자까지 내겐 모조리 후회다. 지난 실패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또 굳이 들춰서 후회하는 사람. 그게 나다. 이런 성향을 최근엔 이렇게 규정하기로 했다.
과거지향적 완벽주의자. 이런 나에게도 구원이 있을까. 이런 당신에게도 구원이 올까. 닳고 닳아 새까맣게 탄 염주처럼, 지금도 이 손안엔 실패와 후회의 덩어리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나는 이것을 주섬주섬 꺼내 당신 눈앞에 간증처럼 꺼내 놓을까 한다.